한 가지 모습보다는 여러 얼굴을 가진 쪽이 더욱 각광을 받는 때지요. 열매로 치면 오미자가 딱 그래요. 다섯 가지 맛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진한 인상을 남기니까요. 오미자 막걸리로 시작해 그처럼 다양한 제품 스펙트럼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양조장, 문경주조의 홍승희 대표를 만나고 왔습니다.

양조장을 운영하게 된 사연이 궁금해요.

30년 전에 경북 지역에서 민속주 유통 일을 했어요. 여러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을 직접 접해보고 유통하다 보면 좋은 술과 나쁜 술을 구별할 줄 알게 돼요. 자연스레 술을 잘 하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도 파악하게 되지요. 그런 흐름을 읽다 보니 내가 한 번 직접 괜찮은 술을 만들어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술 빚을 만한 곳을 찾다가 물 좋은 문경에 자리를 잡게 됐지요. 고향이 옆 동네 예천이라 비교적 친근하기도 했고요.

가장 처음 개발한 제품은 어떤 술인가요?

지금도 판매 중인 ‘문경 오미자 생막걸리’예요. 당시만 해도 이런 제품을 내는 건 꽤 파격적인 시도였어요. 그때는 시중 막걸리들이 대체로 비슷하게 나왔잖아요. 불투명한 흰색 페트병에 담겨서요. 그런데 우리는 몰드도 아예 새로 해서 내용물이 다 드러나게끔 투명한 병을 썼지요. 과실을 넣은 데다 색이 붉은 막걸리는 그때까지 없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이목을 끌었어요. 반응도 꽤 좋았고요.

‘국내 1호’ 오미자 막걸리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국내에 처음 출시된 오미자 막걸리이자 과일을 넣어 만든 최초의 생막걸리 제품이에요.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과일 등을 첨가한 생탁주의 판매를 허용하지 않는 규정이 그때는 존재했거든요. 어떻게든 이걸 꼭 만들어서 팔아보고 싶어 관계 기관에 계속 논의를 요청하고 타협을 시도했어요. 이 술을 판매해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나가기도 했고요.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으로 고군분투한 끝에, 결국 판매 허가를 받아냈어요. 그때는 정말 기뻐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니까요.

문경주조의 술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은 모두 지역에서 재배한 산물을 활용해 만드는 지역특산주예요. 청정한 자연 환경에서 얻은 유기농 찹쌀과 순수한 누룩, 그리고 깨끗한 물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맛이 좋아요. 문경이 또 수질이 좋기로 이름난 곳이잖아요. 양조장을 차리려고 처음에 마음을 먹었을 때 물 좋다는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녀 봤는데, 여기만한 곳이 없어 문경에 자리잡게 된 거고요. 재료가 같아도 물이 바뀌면 술 맛이 달라진다 할 정도로 양조에는 물이 중요하고, 탁월한 수질 덕에 맛 좋은 술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지요. 

현재 생산하고 있는 주요 제품을 하나씩 소개해 주세요.

우선 ‘문희’는 우리 양조장에서 가장 잘 알려진 술 중 하나예요. 상큼하고 묵직한 맛을 내는 프리미엄 탁주로,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 찹쌀의 단맛을 잘 살린 제품이지요. 해당 제품에서 지게미를 걸러내어 만든 ‘맑은 문희주’도 있어요. 또, 오미자 스파클링 탁주인 ‘오희’와 쌀맥주를 표방하는 ‘폭스앤홉스’는 젊은 소비자와 친해질 수 있는 제품이 뭘까 고민하다 만든 술이에요. 일반적인 전통주에 비해 편하고 가볍게 소비할 수 있어요. 폭스앤홉스의 경우에는 주요 재료인 홉을 양조장에서 직접 재배해서 사용하고 있고요.

홉을 양조장에서 직접 재배하신다고요?

양조장 뒤편이 다 홉 밭이에요. 홉을 심게 된 건 제천에서 맥주공장을 운영하는 지인의 제안에서 출발한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도 맥주를 지금은 많이들 만들고 있잖아요. 그런데 핵심 재료는 국내 생산이 어렵기 때문에 모두 수입산을 쓸 수밖에 없어요. 국내에서 발효시켜 만들어도 온라인 판매가 어렵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제 지인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 거예요. 홉 품종을 개량하고 직접 재배할 수 있는 재료를 써서 온라인으로도 팔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유형의 맥주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그렇게 쌀과 홉, 효모를 재료로 사용해 폭스앤홉스라는 제품을 개발하게 된 거지요.

우리술을 아직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술을 제발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한번 접해보고 나면 풍부하고 깊은 맛이 있고, 외국 술과 비교해 봐도 뒤지지 않을 품질을 갖춘 전통주가 많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봐요. 생각보다 좋은 제품이 많이 나와 있잖아요. 우리도 젊은 층 입문자를 위해서 오희 스파클링이나 폭스앤홉스같은 제품을 만들고 있고요. 그래도 지금은 양조장에 젊은 분들이 많이 찾아주고 있어서 고무적이에요.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직접 해 보고 우리술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았으면 해요.

문경주조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신가요?

소주로 결실을 한 번 맺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준비는 계속 하고 있어요. 명인이 만든 전통항아리에 3년 전부터 소주를 숙성 중이에요. 국내에서 가장 알코올도수가 높은 증류주로 구성해 출시하면 어떨까 싶어요. 어쨌거나, 또렷하게 한국적인 색을 내는 술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중국 술이나 일본 술처럼, 병만 봐도 딱 국적을 가늠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종국에는 제대로 된 소주 저장고를 크게 만드는 게 꿈이에요. 방문 고객에게 숙성된 술 맛을 보여 주고 본인에게 맞는 향과 맛을 가진 제품을 선택해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겠나 싶어요.